■ 전시 소개

 매년 유망한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려는 목표를 가진 갤러리박영의 작가 공모 전시 'BAKYOUNG THE SHIFT'(이하 SHIFT)는 올해로 8기를 맞이했다. 갤러리박영은 2023년 첫 전시인 BAKYOUNG THE SHIFT 8기 1부 ⟪逍遙遊(소요유) 展⟫을 선보인다. 소요유란 장자의 책 첫 부분인 내편(內篇)의 첫 번째 나오는 편명인 만큼 장자 사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소요(逍遙)는 이리저리 편안하게 왔다 갔다 한다는 뜻으로 한곳에 고정돼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유(遊) 역시 편안하게 이곳저곳을 노닌다는 뜻이다. 갤러리박영은 김현호, 노정연, 박영숙, 이해나, 임민성, 장은우, 전주희, 최윤지 8명의 작가와 함께 대면, 유희, 조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에 맞추어 어지러운 도시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정신적인 자유를 이야기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였다. 코로나 시대의 종식을 앞두고 만물이 생동하는 5월의 파주, 그리고 갤러리박영의 새로운 전시를 소요하며 즐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대면 (Encounter) | 김현호, 박영숙, 임민성

김현호, 박영숙, 임민성 작가는 미지의 환경과의 조우, 혹은 익숙한 풍경에서 새로운 감상을 찾아가게 한다. 

김현호 작가는 회화 자체에 대한 메타적 접근과 한국화 재료의 개념적 확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연에 대한 향수를 회화로 소환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작가는 이를 위해 흑백의 아크릴 물감에 헤비바디 미디움을 섞어 마티에르를 낸 뒤 카본블랙 물감을 도포하는 방식을 통해 기존의 동양화와는 다른 – 하지만 먹, 배접, 공기 원근법, 산수에서의 시간성 등 한국화의 개념이 확장, 변형된- 작업 방식을 구사한다. 이러한 화면은 형(形)과 신(神)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 속에서 작가만의 독특한 미감을 전신(傳神)하고 있다. 관람자는 어두운 풍경화를 조우할 때 그림은 평면을 넘어서 신체를 가지고 존재하게 되며, 동시에 두려움을 일으킴과 동시에 태초의 시작, 그리고 생의 저편의 색인 검정의 내러티브를 통해 작가는 무지와 무력을 경험한 불확실한 시대에 숭고의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박영숙 작가는 아프리카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공원에서 우연히 마주한 얼룩말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있다. 속박되지 않은 얼룩말의 모습에서 자유로움과 먹선을 닮은 강력한 흑백의 무늬를 마주한 작가는 동물의 줄무늬를 재배열하면서, 사회와 문화, 관계 등에 따라 변화하는 개인의 다층적이고 양가적인 모습을 담았다. 이러한 얼룩말의 무늬는 우리 얼굴의 얼굴 주름처럼 파고들어, 본인의 삶을 반영하고 또 되돌아보게 만드는 역할과 동시에 위장색처럼 우리의 민낯을 가리기도 하며, 연결된 무늬들은 상보적으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얼룩말의 묘사를 통해 작가는 서로가 얽혀있는 여러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무늬를 찾고, 서로의 무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세상의 자유로운 공존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임민성 작가는 일상에서 만난 무형과 유형의 자연물들의 조화로운 상태를 화면안에 극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서구 미학사에서 리얼리즘의 예술철학적 원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예술모방설)이다. 이는 외적 현실의 거울과 같은 모사라는 의미가 아닌, 현실에 대한 실천적인 의미를 가진다. 임민성 작가의 작업 역시 기본적인 회화의 원류에 침착하게 다가가고 있다. 작가가 일상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마주한 뒤 그려낸 윤슬의 풍경 안에는 우리의 가시적인 시각이 담지 못한 빛의 총체성이 담겨있다. 이 빛은 더 나아가 작가에게 ‘믿음의 빛’으로 투영되어 종교적인 의미에서 신을 나타내기도 하고, 자신과 그림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며, 가족에 대한 아련한 사랑과 그리움으로서 개인화되어 묘사된다.

 유희 (play) | 이해나, 장은우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인간의 본질을 ‘유희’로 파악하는 용어이다. 여기서 유희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정신적 창조활동을 일컫는다. 미술이라는 활동도 이런 관점에서 라스코 벽화의 시작을 이래로 유용성을 벗어나 소통과 유희적 과정의 하나로 인식되어져 왔다. 이해나, 장은우 작가 역시 주변 환경에서 작가가 느낀 즐거웠던 감정들과 추억들을 화면 안에 포착하여 화면안에 구축해 나아간다. 

이해나 작가는 화면 내에 작가가 창조해낸 이 세상의 단편적인 자연의 모습을 그려내고 확장시키는 과정을 통해 어른이 되면서 점차 잃어버리는, 일상적이고도 낭만적인 순간들을 묘사한다. 일상적인 지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지극히 사실적이고 즉물적으로 묘사된 하이퍼리얼의 화면 속에서 작가는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을 담아낸다. 그러나 작가는 단순히 보들리야르를 위시한 포스트모던적 사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이와 대비되는 주체로서 외부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물질적 세계를 사회적 의식형태 안에서 정신적으로 획득하여 재생산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서 작가의 화면안에서 세상은 확장되고 또 응시된다.

 장은우 작가는 추억, 기억을 통한 공간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작가에게 걸으며 만나는 도시의 풍경은 매번 같으며 익숙하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낯선 기시감을 주는 공간적 영감을 부여한다. 작가는 도시 공간에서 사라지고 바뀌어가는 주변의 인물들과 골목의 풍경들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표현하기 위하여 한지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다. 켜켜이 한지를 쌓는 반복적인 행위는 중첩된 시간의 역사를 표현하며, 이동시점 기법을 통하여 한 화면에 현재와 과거 시간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개인적인 기억의 공간을 나타낸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바라보던 도시의 면면을 우리의 삶의 기저에서 다시금 되돌아 보고, 도시라는 공간을 개개인의 삶에서 보다 풍부한 '경험의 장'임을 드러내 보고자 한다.

 조응 (Accordance) | 노정연, 전주희, 최윤지

노정연, 전주희, 최윤지 작가는 현실세계에서 마주친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응시킴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노정연 작가는 8년간의 외국생활을 거치며 ‘각자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각각 어느 사회에 속하고,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은 다르게 규정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도시에서 만난 자연물에 대한 작품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담벼락과 도시의 구성요소로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들을 기록하고 페인팅하는 행위는 현재, 매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는 반복적인 일상의 풍경을 다른 각도로 제시해 재인식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주체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고 일상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전주희 작가는 자연 자체가 주는 심상, 그리고 자연이 내뿜는 에너지와 그 에너지가 퍼져 나가는 힘의 관계성에 대한 탐구를 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나 에너지를 동양사상에서 근원과 다섯 방위를 말하는 오방색의 간색間色으로 화면 안의 대상을 형상화 하였다. 화면 속 자연은 현실을 환원한 가상의 공간이거나 때로는 자연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 대한 성찰의 공간으로 설정되며, 그 안에서는 대상의 에너지가 흘러내리는 모습과 함께 대칭되는 이미지를 통해 서로 상호 영향력을 주고받는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하나의 대상에서 퍼져나가는 영향력과 에너지, 시간의 흐름과 그물망과도 같은 관계들의 조화, 그리고 시간의 흐름, 순환, 인과 등등 인간의 기본적 속성이자 자연이 가지고 있는 질서들에 대한 성찰을 조형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최윤지 작가는 우리 주변의 도시를 다루는 서술 방식으로서 완결된 도시가 아닌 건물과 도로가 놓이기 전 도시 건설의 절차적 과정을 포착하고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본인을 목격자이자 냉철한 관찰자로서 발터 벤야민에 의해 제안된 ‘도시의 산책자’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이를 통해 도시라는 공간성에 대하여 조성 과정의 물리적 행위와 방식들, 그리고 부유하고 있는 이미지들을 통해 드러내고 규명하고자 한다. 더불어 작가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부각되지 않는 건설 노동자들의 행위의 흔적들의 묘사를 통해 도시의 구성 과정에 대해 실증적인 탐구를 진행한다. 

■ 관람안내 

￭ 관람시간 : 월-토요일 10am-6pm 

￭ 휴 관 일 : 공휴일을 포함한 매주 일요일(예약제)

￭ 관람요금 : 무료 / 단체관람시 사전예약 / 상시 해설

기타 사항은 홈페이지(www.gallerybakyoung.com), 인스타그램(@gallerybakyoung) 참조